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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시인 김삿갓 (5) · 김삿갓 눈 앞에 우뚝 솟은 금강산

청운의 큰 뜻이 이루어져 청루거각에 누워 있어야 할 몸이 멍석이 깔려있는 낯선 사랑방에 누워 있다니  대체 어느 쪽이 잘못 되어 있는지 분간할 수가 없었다.

"모두 뜬 구름이야  뜬구름"

"아니 이 양반이 잠꼬대는 웬 잠꼬대"

더벅머리 머슴놈이  부지중에 김삿갓이 내뱉은 말을 잠꼬대로 들었던지 툭툭 발길질을 한다.

"총각, 내 잠세."

김삿갓은 이렇게 말하고 억지로 눈을 감았다.

다음날도, 또 다음날도 김삿갓은 계속 북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계절은 벌써 오월 이었고 집을 떠난지 어언 한달이나 되었다.

봄도 지금은 다 지나가고  신록과 더불어 여름이 다가오고 있었다.

김삿갓은 양구를 거쳐 금강산의 관문인 단발령에 도착하였으니 집에서 부터 오백리 길을  걸은 셈이다.

단발령 ..

숙부인 수양대군에게 쫒겨, 이곳을 넘었을 어린 단종왕의 심사가 어떠 하였을까 하는 애처로운 마음이 김삿갓의 마음을 무겁게 짖눌러 마루턱에 앉아 무심히 흘러가는 구름을 바라보며 회한에 젖어 있다가 다시 발길을 재촉 하였다.

단발령을 지나면 천하의 명산 금강산의 품에 안긴다. 이곳에서 비로봉 까지의 거리는 백리길 이지만 수려한 내금강에 첫 머리가 밟히는 지점이었다.

금강산을 눈 앞에 두자 김삿갓의 가슴은 쿵쿵 뛰고 발걸음은 더욱 빨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가는 길 마다 길가에 나무며, 막 자란 풀 한포기며, 딩굴고 있는 돌멩이 하나까지 예사롭게 보이지 않았다.

금강산 어귀 골짜기에는 드문드문 동네도 있었는데 명산을 배경으로 살고 있는 사람들이라서 그런지 인심도 나쁘지 않았다. 어느 골짜기에 이르니 무릉도원 같은 마을이 나타났다.

김삿갓은 쉬어갈겸 동네 어귀로 들어갔다.

마침 글방에서 아이들 글 읽는 소리가 들려오는 집이 있어 김삿갓은 다짜고짜 들어갔다.

방안에는 여나믄 학동들이 있었는데 불쑥 나타난 김삿갓을 보자 호기심 찬 눈으로 바라 보았다.

"마침 글을 짓는 시간이군."

김삿갓은 학동들이 쳐다보던 말던 개의치 않고 학동들이 펼쳐놓은 종이를 바라 보았다.

글제는 역발산 (力拔山)으로 항우의 글을 지으라는 훈장의 분부였다.

김삿갓은 호기심에 한 학동이 지어 놓은 글을 주욱 읽었다.

"남산북산 신령왈 / 南山北山 神嶺曰  

항우당년 난위산 / 項羽當年 難爲山"

"남산 북산 신령이 말하기를 항우가 살았을 적에는 산이 되기 어려웠다더라."

김삿갓은 글을 보고 깜짝 놀랐다. 어린 학동이 지었다고 믿을수 없는 솜씨였다.

그래 옆에 아이는 어떻게 썼는가 하고 읽어 보았다.

"우발좌발 투공중 / 右拔左拔 投空中  

평지왕왕 다신산 / 平地往往 多新山"

"오른손 왼손으로 빼내어 공중에 던지니 평지 곳곳에 새 산이 많이 생겼다."

김삿갓은 감탄했다. 어린 학동들의  글 짓는 솜씨가 보통 수준이 아니었다.

글 좀 하는 선비들은 힘 센 장사는 두려워 하지 않지만 글 잘 하는 인재는 두려워 하는 법이다.

김삿갓도 어린 학동들을 보기가 무서웠다.

그렇다고 슬그머니 나오기도 멋 쩍은 일 이라서 자기도 한수 적어놓았다.

" 항우사후 무장사  / 項羽死後 無壯士  

수장발산 투공중  /  誰將拔山 投空中"

" 항우가 죽은 후 힘쓴 장사가 없었으니  지금은 누가 산을 뽑아 공중에 던질 것인가"

김삿갓이 처음에 이곳에 들어 올때는 학동들에게 글 줄이나 가르쳐 주고 하루쯤 쉬어갈 요량이었으나

어름어름할 자리가 아닌듯 하여 황망히 뛰쳐 나오고 말았다.

며칠을 더 걷자 금강산이 눈 앞에 우뚝 서 있었다. 때는 여름이 되었고 수풀사이에서 목탁을 두드리고 불경을 외우는 소리가 들려 가보니 절이 있었다.

김삿갓은 성큼성큼 법당으로 오르는 층계를 밟았다.

법당안에는 까까머리 스님 한분과 유건에 도포를 입은 젊은 선비 하나가 대좌하고  김삿갓이 온 것도 모르고 무언가 열심히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에헴 !"

김삿갓은 인기척을 하였다.

"누구요 ?"

중이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절 구경 좀 왔소이다."

김삿갓은 천연스럽게 대꾸하고 다짜고짜 법당 안으로 썩 들어섰다.

"아니 이양반이 여기가 어디라고 무례하게 함부로 올라오는게요 ?"

유건을 쓴 선비가 쌍심지를 치켜 세우며 날카롭게 내뱉는다.

"법당이지요, 자비로우신 부처님께서 어디 양반 상놈 가리신답니까 ?"

"아니 이 사람이!"

선비가 어이없어 하며 김삿갓을 위 아래 훝어보며 행색을 살펴본다.

차림새는 비록 남루하지만 말하는 태도를 보아하니 글줄이나 읽은 사람으로 보였는지,

이 무례한 방문객을 보기 좋게 물리칠 계책을 재빨리 궁리했다.

"어디서 오셨소이까?"

이번에는 중이 말문을 열었다.

"예, 정처없이 떠도는 나그네 올씨다. 잠시 쉬어갈겸 절 구경을 왔습니다."

그러면서 두 사람 곁에 털썩 주저 앉았다.

그러자 젊은 선비가 눈쌀을 찌푸리며 노골적인 언사로 말을 하였다.

"여보시오, 우린 지금 긴요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니 자리를 삼가해 주시오."

"어허, 보아하니 은밀한 말씀을 나누고 계신 모양인데 참 딱도 하시오."

"아니 뭐가 딱하단 말이오 ?"

김삿갓은 냉큼 일어날 기색은 없이 그들의 말꼬리를 물고 늘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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