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랑시인 김삿갓 (4)

*방랑의 시작

따뜻한 봄 볕을 받으며 김삿갓은 망연히 북쪽으로 북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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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걸었던지 .. 야산 기슭이 끝나고 넓은 들판이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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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골에만 살던 그는 넓은 들판을 보니, 일순 가슴조차 뻥 뚫리는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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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에서는 농부들이 한창 모내기를 하고 있었고, 어디선가는 농악 소리도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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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삿갓은 구성진 못줄 넘기는 소리를 들으며 모내기를 하고 있는 두렁길에 발길을 멈추고 구경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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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군들은 못줄 넘기는 소리와 함께,  빠른 손 놀림으로 신명나게 일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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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삿갓은 가만히 서서 그들의 일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새참거리라도 얻을 수 있을까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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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를 쳐다 보니, 오시(午時)는 지난듯 하고 ..  얼추, 새참이 나올 시간이 임박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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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철이 되면 농군들은 하루 다섯끼를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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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조반을 마치고 들에 나가면 점심전에 막걸리가 나오고,  다음으로 점심을 먹게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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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전에 국수를 곁들인 술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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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농사철이라 음식이 흔하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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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삿갓은 입맛이 먼저 다셔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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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떠나 올때 이미 아침은 설친채 줄곧 걸어왔으니 시장기가 느껴질 법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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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농부들의 가락에 귀를 기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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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 줄을 잡은 사람이 선창을 하면 모심는 사람들은 대꾸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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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라뒤야 상사뒤야 여보소 농군님네 얼마나 남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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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전옥답 서마지기 반달만큼 남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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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라뒤야 상사뒤야 여보소 농군님네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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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농사 잘지어 풍년가 불라치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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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라뒤야 상사뒤야 풍년이 들면 뭣하겠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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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가서 비단사서 우리님 곱게 입혀보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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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라뒤야 상사뒤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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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나는 일 소리를 들은 김삿갓은 저절로 어깨가 들썩 거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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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도 논으로 당장 뛰어들어 그들과 같이 어울려 보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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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마침 아낙네들이 커다란 함지박을 이고 논두렁 길을 걸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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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크, 새참이 나오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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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를 대접하려고 가지고 오는 것은 아니었지만 시장기가 든 김삿갓은 무엇보다  반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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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쉬었다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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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 줄잡이가 줄을 높이 쳐들며 새참이 나왔음을 알리자 엎드려 있던 농군들이 일제히 허리를 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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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탕물에 손을 흔들어 씻고, 하나씩 아낙네들이 새참을 차리는 논두럭으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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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낙네들은 그릇 그릇 넉넉한 국수를 담아냈고, 막걸리 동이에는 표주박도 띄워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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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바라 보던 김삿갓은 침이 꿀꺽 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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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곤 그쪽으로 어슬렁 어슬렁 걸어가며 주위를 끌기위해 우선 한마디 내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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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 농부가 한번 구성지고 신명납니다 그려, 허허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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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군들은 일제히 그를 돌아다 보았다. 무명 두루마기에 삿갓을 쓰고 지팡이를 들고 있는 폼이 마치 어느 심심유곡에서 내려온 도사(道士) 같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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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잘못 잡은 것은 아니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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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수구레한 못 줄잡이가 김삿갓의 행색을 살펴보고 말대꾸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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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야 밟고 지나 가라고 있는 것인데, 잘 들고 못 들고 할리가 있겠소이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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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 보아하니 염불이나 조아리는 땡중은 아닌 것 같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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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선골도인(仙骨道人)도 아닌 것 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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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끝나자 김삿갓이 바삐 다음 말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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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문전걸식 , 비렁뱅이도 아닌 것 같다는 말씀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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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허, 그 양반 눈치도 빠르네. 여보시오 도사 비슷한 양반, 보아하니 출출하신 모양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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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참국수에 막걸리나 자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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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눈치껏 새참을 이고 온 아낙이 새로, 국수 한사발을 말아 김삿갓 앞에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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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철 들녁 인심은 좋은 법이다.  너나없이 지나는 사람을 불러 차린상에 젓가락을 얹어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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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라도 맛있는 들녁 음식을 지나치기 또한  어려운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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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삿갓은 순식간에 국수 한 그릇을 비우고 막걸리도 꿀꺽꿀꺽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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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가 불렀고 이제사 살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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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은 값을 한다고 모내기를 하는 논에 들어갈 처지가 아니라서 잘 먹고 간다는 인사를 하고 다시 길을 재촉하여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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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날이 저물었다. 어디에 가서 하루 밤 신세를 져야할 처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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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꽤 큰 동네로 들어갔다. 이집 저집을 살펴보다가 사랑채가 있을 만한 어느 큰 집에 이르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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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장 계시오" 목청을 가다듬고 큰 소리로 주인을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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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뉘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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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채에서 풍채가 그럴싸한 중년 남자가 탕건을 쓰고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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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가던 과객인데 어둠을 만나 하룻밤 신세를 질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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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삿갓은 처음으로 해보는 구걸 행각이라 차마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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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객이라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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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 주인장의 표정이 싹 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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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객이 날이 저물면 주막을 찾을 것이지 여염집을 왜 찾는단 말이오.썩 돌아가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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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릿발 같은 말씨로 매정하게 말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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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인심이 이럴 수 있을까 하고 분한 생각이 치밀었지만 김삿갓은 꿀꺽 참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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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아쉬운 것은 나 인데, 화를 낸들 뭐 한단 말이냐. 앞으로 이와 같은 일을 다반사로 겪게 될터인 즉 ..허허.. 그러나 오늘 인심은 한번 고약하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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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생각한 김삿갓, 그래도 밸이 틀려 한마디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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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 안된다면 그만이지 뭐 그깐일로 호령을 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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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저 놈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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놈자가 서슴없이 튀어 나왔지만 이미 돌아선 그의 등 뒤에 꽂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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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삿갓은 들은 척 만 척 그집 문전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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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집을 더 찾아가 가까스로 어느 허술한 사랑채에 들어가게 된 김삿갓은 저녁도 굶은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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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벅머리 낮선 머슴놈과 더불어 하룻밤을 보내게 되었는데, 왠지 기가막힌 생각이 들어 잠이 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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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은 점점 깊어가는 듯 한데, 어디서 두견새 우는 소리가 자신의 처지처럼 애처롭게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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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삿갓은 문득 시상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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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양구립양시비 / 斜陽邱立兩柴扉  

삼피주인 수각휘 / 三被主人手却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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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우역지풍속박 / 杜宇亦知風俗薄  

격림제송불여귀 / 隔林啼送不如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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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저물어 두어 집 문을 두드렸는데 

주인은 번번히 손을 휘둘러 쫒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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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견새도 이 박한 인심을 알고 있는지

수풀속에 떨어져 집에 돌아가라고 울어주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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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사이 눈물이 김삿갓의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신세 한탄이 절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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