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에 오시면.......

  • 김병철
  • 2018-08-10 12:54:20
  • 조회 258
  • 추천 0

 

여보시게!

헐거운 육신을 붙들고 여기까지 이제껏 잘도 오셨네.

여긴 옛 가야시대 고령가야의 고도였다가 통일신라시대 때는 잠시 강주라는 이름을 얻기도 했지. 비로소 진주라는 이름을 얻게 된 건 고려 태조 23년이었고 성종 때는 전국 12목 중 하나 진주목으로 그 이름이 높았던 곳이었지.

 

이왕 오셨으니 진주성 한 바퀴 휘 두르다 서장대 찬바람에 걸친 언 몸 녹이려면 촉석루 아랫자락 의암 바위 위에 한번 서보시게.

겨울해가 따뜻하지는 않지만 건너편 망경동 대숲은 여전히 푸르고 사공 없는 나룻배 한척은 아직도 외로운 강을 지키고 있다네.

 

짧은 겨울해가 꼭두서니에 서면 대안동 4-1번지 천황식당 비빔밥 한 그릇은 꼭 자시게.

아직 60년대 풍경이 남은 나무전거리 골목길을 돌아

삐걱 소리 나는 낡은 가게 문을 열고 들어서면

70년대 양은 주전자가 아직도 연탄난로 위에서 따뜻한 김을 내며 끓고 있을 걸세.

3대에 걸쳐 80년을 대물림을 한 곰삭은 아주머니가 제대로 간이 밴 여린 나물을 무쳐 상을 차리거든 얼른 고추장을 고루 펴서 밥을 비비시게.

잘만하면 여린 소고기 육회 맛에 혓바닥 세치가 깨춤을 출지도 모를 일이지. 선지를 넣은 국물 맛에 반해 버린 사람 어디 한두 사람이어야 말이지.

 

해가 한 뼘쯤 남았다면

이왕 오신 김에 옛 너우니 자리 진양호 댐에 한번 가보시는 건 어떻겠나?

공원 꼭대기 팔각정 전망대에 서면 천하의 명산 지리산을 둘러 온 경호강, 덕천강 물이 합수하여 만든 거울같이 맑은 진양호반이 한눈에 든다네..

산 깊은 강원도 춘천댐, 소양 댐만이야 못하겠지만 지리산 골짜기 물을 담아 하늘같은 호수를 만들었으니 수달은 바위틈에 집을 지었고 무리 진 백조는 살풋 얼음 잡힌 물속에 노는 실팍한 떡붕어를 노려보며 산다네.

구름 걸린 낮은 산에 저녁노을 얹힌 호반풍경도 참 그윽하지.

 

꼭 가야 할 길이 아니라면 일부러 막차를 놓치시는 건 어떻겠나?

엄마 치맛자락처럼 꼭 움켜쥐고 가야 할 안타까운 삶이 아니라면 셔츠의 윗 단추하나 쯤은 풀고 사는 게 제격이지.

 

친구들과 서부시장 골목집 할머니가 빚어낸 진주온면으로 속을 따뜻하게 데우고 늦은 밤 봉곡동 실비집에서 엉덩이 실팍한 미시 아지매와 찐하게 한잔 걸친 다음 날이라면 얼큰한 해장국 생각이 절로 날지도 모르지. 그렇다면 아침 일찍 중앙시장 통 제일식당으로 가보시게. 고만고만한 사람들 옹기종기 모여 콧등에 땀 흘리며 후루룩 한 그릇씩 비워내고 있을 걸세. 비좁은 일층을 지나 다락방에 올라 한자리 차지하고 앉아 맛있게 먹고 나서 늙수그레한 주인장에게 국물이 모자란다고 슬쩍 귀띔이라도 넣어 보시게. 또 한 그릇 후딱 퍼 상에 올리는 후덕한 인심에 놀랄지도 모르지.

 

그래도 진주가 좋아 눌러 살 생각은 아예 마시게.

남강의 경치가 맘에 들고 진주사람 인심이 맘에 들지 모르지만 논개를 아시겠는가?

진주여자 한번 맘먹은 일, 석류꽃 같은 붉은 칼을 품어 서릿발 같이 매서운 정신이 있는 걸 알기는 어렵다네. 쌍가락지 낀 마음도 겉으로 의뭉스럽게 잘 내색하지 않는 까닭이니 그게 어디 자네 탓이겠나?

 

그래도 진주가 맘에 들어 어쩔 수 없다면 그건 나도 할 수 없는 일이지.

진주가 좋아 터를 잡고 뿌리를 내리고 살기로 했다면 우리 셋 가끔 망경동 길거리 포장마차에서 소주잔 주고받으며 세상 물정 모르는 이야기라도 떠들다 밤이 깊으면 어깨동무하며 천수교 다리를 건너갈지도 모를 일이지.

 

그래도 해 저무는 늘그막에 우리 이만한 즐거움을 또 어디서 찾아내겠는가?

 

김 병철 (4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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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좋은 글입니다. 이글을 쓰신 분의 신분이라도 좀 밝혀주셨으면 합니다.2018.08.10 18: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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